한성 GK898B PRO 후기 – 15만 원대 무접점, 살 만한 물건인가

무접점 키보드는 오랫동안 30만 원 이상의 취미였습니다. 리얼포스, HHKB, 레오폴드 토프레 — 전부 가격표가 부담스러운 제품들입니다. 한성컴퓨터 GK898B PRO 염료승화 EDITION은 그 무접점을 15만 9천 원에 내놓았습니다. 거기에 8,000Hz 폴링레이트, 래피드 트리거, 3모드 무선까지 넣었습니다.

“한무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인지도가 빠르게 올라간 제품입니다. 다만 이 키보드에는 칭찬과 불만이 동시에 따라붙습니다. 타건감에 빠진 사람과 스페이스바 품질에 실망한 사람이 같은 제품을 두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기본 스펙 정리

항목내용
배열풀배열 108키
스위치정전용량 무접점 EC (35g / 45g 선택)
키캡PBT 염료승화, 체리 프로파일, 한/영 정각 각인
유선 폴링레이트8,000Hz (0.125ms)
무선블루투스 5.2 × 2채널 + ForceLink 2.4GHz 동글
래피드 트리거키별 개별 설정 가능 (유선 한정)
배터리3,000mAh / 최대 300시간(공칭)
무게1,097g
백라이트없음
핫스왑미지원

색상은 INTERSTELLAR, CAMPING, Purple Heart, SURFYY, MULTI PASTEL 총 5종입니다. 35g과 45g 모델이 색상별로 나뉘어 판매됩니다. 구성품에 ForceLink 전용 동글, USB C-A 케이블, 더스트 커버, 키캡 리무버가 포함됩니다.


가격: 색상에 따라 2만 원 넘게 차이 난다

출시가는 18만 5천 원이었습니다. 현재 다나와 최저가 기준으로 색상별 가격이 꽤 다릅니다.

색상다나와 최저가
INTERSTELLAR · Purple Heart159,000원
CAMPING · SURFYY166,500원
MULTI PASTEL185,000원

카드 혜택을 조합하면 INTERSTELLAR 기준 14만 3천 원대까지 떨어집니다. 쿠팡에서도 14만 3,040원에 올라오는 경우가 있고, 한성 슈퍼스토어에서는 리퍼 제품을 14만 8천 원에 판매하기도 합니다. MULTI PASTEL은 가장 최근 추가된 컬러라 아직 정가를 유지 중입니다.

색상 선택이 곧 가격 선택입니다. 특별한 컬러 선호가 없다면 INTERSTELLAR나 Purple Heart가 가장 경제적입니다.


타건감: 이 키보드를 사는 이유

GK898B PRO를 구매하는 가장 큰 동기는 타건감입니다. 정전용량 무접점 특유의 소리가 있습니다. 기계식의 딸깍·찰칵과는 완전히 다른 계열입니다. “보글보글”, “서걱서걱” 같은 표현이 자주 쓰입니다.

35g 모델은 손가락이 키에 닿기만 해도 입력되는 수준의 가벼운 키압입니다. 장시간 타이핑에서 손가락 피로가 거의 없습니다. 그 대신 키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으면 의도치 않은 입력이 발생합니다. “ㅇㅇㅇㅇ” 오타가 난다는 이야기가 커뮤니티 어디에서든 나옵니다.

45g는 그보다 확실한 저항감을 줍니다. 일반 멤브레인이나 저소음 적축과 비슷한 정도의 하중입니다. 오타 문제가 줄어드는 대신, 무접점의 극한 가벼움을 체감하긴 어렵습니다.

FN+F9로 4단계 키압 감도 조절이 됩니다. 소프트웨어 없이도 키보드 단독으로 변경 가능합니다. 다만 이건 전기적 감도를 바꾸는 것이지, 물리적 스프링 하중을 바꾸는 건 아닙니다. 35g 모델에서 감도를 낮춰도 손가락에 느껴지는 가벼움 자체는 동일합니다.


래피드 트리거와 8K 폴링: 게이밍 무접점의 가능성

래피드 트리거는 키를 누른 뒤 살짝만 떼어도 즉시 해제 → 재입력이 되는 기능입니다. FPS에서 스트레이핑(좌우 빠른 이동), 리듬 게임에서 연타 정확도에 실질적 차이를 만듭니다.

GK898B PRO는 전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키 단위로 입력값·해제값·민감도를 따로 설정합니다. 8,000Hz 폴링레이트와 결합되면 이론상 0.125ms 응답이 가능합니다. 무접점 키보드 중에서 이 수준의 게이밍 스펙을 제공하는 제품은 현재 GK898B PRO뿐입니다.

단, 유선 + 최고 폴링 단계에서만 동작합니다. 블루투스나 ForceLink 동글 연결 상태에서는 래피드 트리거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무선 게이밍을 전제로 이 키보드를 선택하면 핵심 기능을 쓸 수 없습니다.


스페이스바 스태빌라이저: “뽑기운”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

GK898B PRO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입니다. 스페이스바를 누를 때 딸깍거림, 걸리는 느낌, 좌우 비대칭 눌림이 발생하는 개체가 있습니다. PRO 버전에서 사전 윤활과 러버 가이드를 적용해 이전보다 개선했다는 평가가 있으나,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좋은 개체를 받은 사람은 “스페이스바 문제? 내 건 아무 이상 없다”고 하고, 나쁜 개체를 받은 사람은 “하루 만에 딸깍거림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동일 제품에서 이렇게 극단적으로 평가가 갈리는 건 품질 관리(QC)의 편차 때문입니다.

자가 윤활로 해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구매자가 키보드를 분해해서 그리스를 바를 준비가 된 건 아닙니다. A/S를 통해 교환받았다는 사례도 있으니, 문제가 있으면 한성 슈퍼스토어 고객센터를 이용하는 편이 낫습니다.


소프트웨어: 기능은 많은데 접근이 불편하다

래피드 트리거 설정, 키 리매핑, 매크로, 키 캘리브레이션 등 핵심 커스터마이징이 전부 전용 소프트웨어에 의존합니다. 문제는 이 소프트웨어가 쉽게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공식 홈페이지(슈퍼스토어)의 다운로드 게시판을 직접 찾아가야 합니다. 제품 상세 페이지에 링크가 바로 걸려 있지 않습니다. 매뉴얼에도 상세 안내가 부족합니다. 설치 후에도 Windows 유선 연결에서만 동작합니다. Mac 유저는 아예 사용이 불가합니다.

펌웨어 업데이트 시 잘못된 버전을 선택하면 키보드가 먹통이 될 위험이 있다는 경고도 나옵니다. 래피드 트리거나 캘리브레이션처럼 이 키보드의 차별화 포인트에 해당하는 기능이 소프트웨어에 묶여 있으므로, 이 부분의 불편함은 제품 경험에 직접적 영향을 줍니다.


무선 연결: ForceLink는 쓸 만하고, 블루투스는 아쉽다

3모드 무선을 지원하지만 모드별 체감 차이가 큽니다.

ForceLink 2.4GHz 동글은 1,000Hz 폴링으로 연결됩니다. 체감 지연이 거의 없고, 사무 환경이나 일상 사용에서 유선과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동글 크기도 작아 USB 포트에 꽂아두면 존재감이 없습니다.

블루투스 5.2는 평가가 갈립니다. 500Hz 폴링에 실측 지연이 20~40ms 수준이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문서 작업 정도에는 불편함이 없다는 의견과, 타이핑 도중 미세한 끊김이 거슬린다는 의견이 공존합니다. 로지텍 MX Keys S 같은 블루투스 전문 키보드와 비교하면 연결 안정성에서 차이가 납니다.

한 가지 더. 무선 상태에서 3시간 미사용 시 완전 전원이 차단됩니다. 슬립 모드가 아니라 아예 꺼집니다. 다시 쓰려면 측면 전원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잠깐 자리를 비웠다 돌아와서 바로 타이핑하려는데 반응이 없으면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리얼포스·HHKB와 비교하면

무접점 키보드를 사려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비교입니다.

GK898B PRO리얼포스 R4HHKB HYBRID Type-S
가격15.9만 원39.5만 원~34만 원
스위치EC (NIZ 계열)TopreTopre
8K 폴링
래피드 트리거
무선BT + 동글BT + USBBT + USB
배열풀배열 108키풀배열/TKL60%

가격 차이가 2배 이상입니다. 8K 폴링과 래피드 트리거는 GK898B PRO에만 있습니다. 스펙 표로만 보면 한성이 압도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타건감의 결이 다릅니다. Topre 스위치는 러버돔과 스프링의 조합이 만드는 “도각도각” 촉감이 있고, NIZ EC 계열은 그보다 부드럽고 가벼운 “보글보글” 느낌입니다. 스프링 복원력의 질감, 바닥 소리의 단단함, 키캡 유격의 정도에서 Topre 쪽이 일관되게 정밀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빌드 퀄리티 — 하우징 공차, 스태빌라이저 일관성, 도장 마감 — 에서도 일본 생산 리얼포스가 우위입니다.

GK898B PRO는 무접점의 핵심인 타건 감촉을 70~80% 수준으로 재현하되 가격을 절반 이하로 낮춘 제품이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입문용으로 무접점이 맞는지 확인해본 뒤, 맞으면 리얼포스로 간다”는 구매 패턴이 커뮤니티에서 자주 관찰됩니다.


염료승화 vs 동그리: 같은 키보드, 다른 키캡

GK898B PRO에는 키캡만 다른 두 가지 에디션이 있습니다.

염료승화 EDITION은 전통적 직각 키캡에 PBT 염료승화 각인입니다. 각인이 키캡 자체에 스며든 방식이라 마모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표면 질감은 약간 거칠고 건조합니다.

동그리 EDITION은 한성 특허의 라운드엣지 이중사출 키캡입니다.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되어 손가락 접촉 면적이 약 15% 더 넓습니다. 이중사출이므로 각인 내구성은 염료승화와 동급입니다.

타건감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큽니다. 키캡 프로파일과 표면 재질이 다르면 소리와 촉감이 달라집니다. 가능하면 오프라인 매장에서 두 에디션을 나란히 쳐보고 결정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온라인 구매라면, 일반적인 체리 프로파일에 익숙한 사람은 염료승화, 좀 더 부드러운 접촉감을 원하면 동그리를 선택하면 됩니다.


이 키보드가 맞는 사람

무접점 키보드를 처음 경험해보고 싶은데, 30만 원 이상을 선뜻 쓰기 어려운 경우에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입니다. 풀배열이 필요한 사무·회계·데이터 입력 환경에서 장시간 타이핑하는 직군에도 적합합니다. FPS·리듬 게임 유저가 무접점 + 래피드 트리거 조합을 원한다면 현재 이 제품 외에 선택지가 없습니다. 한글 키캡, 국내 A/S, 다양한 색상을 중시하는 구매자에게도 장점이 뚜렷합니다.

이 키보드가 맞지 않는 사람

Topre급 타건감 완성도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페이스바 뽑기, 소프트웨어 불편 같은 사소한 하자에 예민한 성향이라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두운 환경에서 주로 작업하는데 백라이트가 필수라면 이 키보드는 탈락입니다. Mac 환경에서 래피드 트리거·키 리매핑 등 소프트웨어 기능을 활용하고 싶은 유저에게도 맞지 않습니다. 무선 게이밍이 주 목적이라면 8K와 래피드 트리거를 쓸 수 없으므로 구매 이유 자체가 사라집니다.


구매 판단 정리

15만 9천 원(카드 혜택 시 14만 3천 원)에 정전용량 무접점 + 8K + 래피드 트리거 + 3모드 무선을 전부 넣은 키보드는 현재 이것뿐입니다. 스펙 대비 가격은 경쟁 제품과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다만 “가격이 절반이면 완성도도 절반”은 아니지만, 100%도 아닙니다. 스페이스바 QC, 소프트웨어, 블루투스 지연은 분명한 약점입니다. 이 약점들을 알고 사면 만족도가 높고, 모르고 사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색상은 INTERSTELLAR·Purple Heart가 15만 9천 원으로 가장 저렴합니다. 키압은 오타 걱정이 있다면 45g, 극한의 가벼움을 원하면 35g입니다. 구매 전 오프라인 타건 비교를 강하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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