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식 키보드 시장에서 체리(CHERRY)는 스위치 제조사로 더 익숙합니다. Leopold, Ducky, Varmilo 전부 체리 MX 스위치를 가져다 쓰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CHERRY MX 1.1 TKL은 스위치를 만든 회사가 직접 완성한 키보드입니다. 국내 정발가 기준 5~7만 원. 독일산 체리 MX 정품 스위치가 들어간 텐키리스 키보드치고는 파격적인 가격대입니다.
이 가격이 가능한 이유가 있고, 그에 따른 트레이드오프도 분명합니다.
무보강 구조라는 설계 방식
CHERRY MX 1.1 TKL을 이해하려면 ‘무보강(Plateless)’이라는 단어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기계식 키보드는 스위치를 금속 보강판(plate) 위에 고정합니다. MX 1.1 TKL은 이 보강판이 없습니다. 스위치가 PCB 기판 위에 직접 납땜되어 있습니다.
보강판이 없으면 금속 공진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키를 누를 때 ‘쩡’거리는 울림이 구조적으로 차단됩니다. 스위치 자체의 감촉만 손끝에 전달되는 방식이라, 리니어 축에서는 부드러움이, 택타일 축에서는 걸림감이 비교적 깨끗하게 느껴집니다.
전작인 MX Board 1.0 TKL은 오히려 스틸 보강판을 채택했었습니다. 1.1에서 무보강으로 돌아온 것은 체리 키보드의 전통적인 설계 방향으로 회귀한 셈입니다.
스펙 정리
| 항목 | 내용 |
|---|---|
| 스위치 | Cherry MX 적축 / 갈축 / 청축 / 저소음 적축 |
| 키캡 | ABS 레이저 각인, Step Sculpture 2 프로파일 |
| 연결 | USB 유선 (분리형 USB-C to USB-A) |
| 배열 | 87키 TKL, 한글 배열 |
| 백라이트 | Non-LED 모델: 없음 / RGB 모델: 별도 존재 |
| 크기 | 363 × 142 × 33mm |
| 무게 | 591g |
| N키 롤오버 | Full NKRO |
| 핫스왑 | 미지원 |
| 스태빌라이저 | PCB 장착, 공장 윤활 적용 |
| 소프트웨어 | Cherry Utility Software (키 리맵핑, 매크로) |
| 보증 | 2년 (국내 유통사 피씨디렉트) |
Step Sculpture 2는 체리 고유의 키캡 프로파일입니다. OEM보다 높이가 낮고 곡면 처리가 적용되어 있어서 장시간 타이핑 시 손목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스페이스바는 엄지 전용 곡면이 별도로 들어가 있습니다.
전작에서 Esc 옆에 있던 물리적 체리키(전용 기능키)는 완전히 삭제되었습니다. Fn+F9 조합으로 대체된 이 변경은 오입력 문제를 제거한 부분이라 긍정적입니다. 높이 조절용 틸트 다리 대신 탈착·재배치가 가능한 미끄럼 방지 고무 패드 6개가 들어갑니다.
가격과 구매처
한국·아시아 시장 전용 모델입니다. 피씨디렉트가 국내 공식 유통을 맡고 있고, 2023년 5월 출시되었습니다.
Non-LED 버전
| 채널 | 가격대 |
|---|---|
| 다나와 최저가 | ₩49,000~69,000 |
| 네이버쇼핑 | ₩46,550~65,550 (멤버십 적립 적용 시) |
| 11번가 | ₩69,000~79,000 (카드할인 적용 시 ₩49,680 확인) |
| 무신사 | ₩69,000 |
RGB 버전은 ₩79,000~89,000 선입니다. Non-LED 대비 1~2만 원 정도 높습니다. 다만 RGB는 적축(화이트)과 갈축(블랙) 2종만 존재합니다. 4종 스위치 전체에서 고르려면 Non-LED를 선택해야 합니다.
참고로 전작 MX Board 1.0 TKL의 미국 정가가 $89.99~99.99였습니다. 한국 정발가 ₩69,000은 글로벌 기준으로 봐도 40~50% 저렴한 수준입니다. 국내에서 특가가 뜨면 5만 원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타건감에 대해
무보강 구조의 영향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입니다. 보강판이 있는 키보드와 비교하면 키 입력 시 경직된 느낌이 덜합니다. 바닥까지 누르는 감각이 딱딱하지 않고, 스위치 고유의 특성이 비교적 있는 그대로 전달됩니다.
저소음 적축(Silent Red) 조합에서 만족도가 가장 높습니다. 기계식 키보드 특유의 소음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라, 사무실이나 공용 공간에서 쓰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이게 기계식이 맞나”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입니다.
갈축은 택타일 피드백이 뚜렷하되 소음은 적당한 중간 포지션. 적축은 가볍고 빠른 입력에 유리하지만 약간의 서걱거림이 있습니다. 청축은 클릭음이 명확하나 주변 사람 배려가 필요한 환경에선 부적합합니다.
스태빌라이저는 공장에서 윤활 처리가 되어 출고됩니다. 스페이스바, Shift, Enter 같은 긴 키에서 철심 소리가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다만 개체 차이는 존재합니다.
키캡 — 이 제품의 가장 뚜렷한 약점
ABS 레이저 각인입니다. 2023년 출시 기준으로도 아쉬운 선택입니다. 같은 가격대 국산 보급형 키보드도 PBT 이중사출을 넣는 시대에, 체리 정품 키보드가 ABS 레이저 각인이라는 점은 거의 모든 리뷰에서 지적됩니다.
실사용에서 체감되는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장기간 사용하면 자주 쓰는 키의 각인이 마모됩니다. 둘째, 키캡 표면이 번들거리는 현상(텍스처 변질)이 발생합니다. 6개월~1년 이상 매일 쓰면 WASD, Enter, 스페이스바 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별도 PBT 키캡 세트로 교체하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Step Sculpture 2 프로파일은 체리 고유 규격이라 타사 키캡으로 완벽히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OEM이나 Cherry 프로파일 키캡을 올리면 타건 느낌 자체가 달라집니다. 키캡 교체를 전제로 구매하는 건 이 키보드의 특성을 절반만 쓰겠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통울림에 대한 의견 분열
무보강 구조니까 통울림이 없을 거라고 기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보강판 공진음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우징 자체가 ABS 플라스틱이고 내부 흡음재가 별도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타건 강도에 따라 하우징 울림이 발생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통울림이 적다”와 “통울림이 다소 있다”는 같은 제품에 대한 상반된 후기가 공존합니다. 타건 습관이 강한 사람일수록 하우징 울림을 감지할 가능성이 높고, 가볍게 치는 사람은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이 부분은 개인차 영역입니다.
Leopold FC750R PD처럼 내부에 방음 패드를 넣거나, Ducky One 3 TKL처럼 이중 흡음재를 적용한 제품과 비교하면, 정숙성 면에서는 한 단계 아래입니다. 대신 가격이 절반 이하라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경쟁 제품과의 거리
CHERRY MX 1.1 TKL은 한국 시장에서 5~7만 원대에 위치합니다. 이 가격대에서 독일산 체리 MX 정품 스위치가 들어간 텐키리스 기계식 키보드는 이 제품뿐입니다.
Leopold FC750R PD는 12~14만 원입니다. PBT 이중사출 1.5mm 키캡, 방음 패드, DIP 스위치가 포함됩니다. 빌드 퀄리티와 키캡 품질에서 확실히 상위입니다. Ducky One 3 TKL은 12~15만 원대. 핫스왑을 지원하고 이중 방음재가 들어갑니다. 스위치를 나중에 바꿔볼 수 있다는 건 입문자에게 큰 메리트입니다.
Keychron Q3은 17~20만 원대. 알루미늄 CNC 하우징에 가스켓 마운트, QMK/VIA 지원까지 갖춘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입니다. 비교 대상이라기보단 상위 이동 시 검토할 선택지입니다.
결국 MX 1.1 TKL의 위치는 명확합니다. 12만 원 이상 키보드들이 제공하는 PBT 키캡, 핫스왑, 방음재, 알루미늄 하우징 같은 부가 기능은 전부 빠져 있습니다. 그 대신 체리 MX 스위치의 원본 타건감을 절반 가격에 제공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맞습니다
5~7만 원 예산 안에서 기계식 키보드를 처음 구매하는 경우. 체리 MX 스위치의 기본적인 감촉을 경험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무실에서 정숙하게 쓸 기계식 키보드가 필요한 경우, 저소음 적축 조합은 멤브레인 키보드와 소음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키캡 교체나 스위치 교체 같은 커스터마이징에 관심 없이, 꺼내서 바로 쓰는 완성품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적합합니다. 전용 소프트웨어로 키 리맵핑과 매크로 설정이 되기 때문에 업무용으로도 충분합니다.
맞지 않는 사람도 분명합니다
키캡 품질을 중시하는 사람. ABS 레이저 각인은 분명한 타협점이고, 장기 사용 시 마모가 불가피합니다. 다양한 스위치를 시험해보고 싶은 사람. 납땜 방식이라 스위치 교체가 불가능합니다. Ducky One 3 TKL이나 Keychron 라인이 더 나은 선택입니다.
무선 연결이 필요한 환경이라면 아예 후보에서 제외해야 합니다. USB 유선 전용입니다. RGB 조명을 원하면서 청축이나 저소음 적축을 쓰고 싶은 경우에도 해당 조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매 판단 정리
| 판단 기준 | 내용 |
|---|---|
| 가격 | 정발 ₩49,000~69,000 (체리 정품 기계식 중 최저가) |
| 타건감 | 무보강 구조 특유의 부드러운 감촉, 저소음 적축 조합 시 정숙성 우수 |
| 키캡 | ABS 레이저 각인 — 가장 큰 약점 |
| 내구성 | 스위치 5천만 회 보증, Gold Crosspoint 접점 |
| A/S | 피씨디렉트 2년 무상 보증 |
| 커스터마이징 | 핫스왑 미지원, 키캡 교체 시 프로파일 변경 불가피 |
체리라는 브랜드와 무보강이라는 구조, 그리고 5만 원대라는 가격.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성립하는 키보드는 현재 한국 시장에 이 제품 하나뿐입니다. 키캡 품질이라는 분명한 약점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가격대에서 이보다 나은 선택을 찾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