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플레이 H95 후기 — 120만 원짜리 무선 헤드폰, 그 돈값을 하는가

뱅앤올룹슨 베오플레이 H95의 한국 정가는 144만 9천 원입니다. 후속 모델 H100 출시 이후 할인이 붙어 현재 실거래가는 약 115만 원대. 그래도 Sony WH-1000XM5 세 개를 살 수 있는 금액입니다. 이 가격 차이가 정당한지 아닌지가, H95 구매를 고민하는 사람이 결국 부딪히는 유일한 질문입니다.


손에 쥐는 순간 납득되는 것들

H95를 처음 꺼내 들면 가격에 대한 의문이 일부 해소됩니다. 양극 산화 처리 알루미늄 프레임, 램스킨(양가죽) 이어패드, 카우하이드 헤드밴드. 플라스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어패드는 자석 부착식이라 교체가 가능하고, 메모리폼 충전재가 두꺼워서 장시간 착용에도 귀가 눌리는 감각이 적습니다.

기본 제공 케이스도 알루미늄입니다. 문제는 이 케이스 무게가 약 500g이라는 점. 헤드폰 323g에 케이스까지 합치면 총 800g이 넘습니다. 출장 가방에 넣고 다닐 물건이라면 이 무게는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양쪽 이어컵의 물리 다이얼은 H95에서 가장 호평받는 요소입니다. 오른쪽은 볼륨, 왼쪽은 ANC 강도를 조절합니다. 부드럽게 회전하면서 적절한 클릭 저항이 있어 눈을 감고도 정확한 조작이 됩니다. AirPods Max의 Digital Crown과 비교하면 직관성에서 확실히 앞섭니다.


무선 ANC 헤드폰 중 음질은 확실히 상위권

40mm 티타늄 드라이버에 네오디뮴 마그넷 구성입니다. 전체 음색은 저음과 고음이 강조된 V자형 시그니처. 이 튜닝이 H95의 성격을 결정짓습니다.

저음이 이 헤드폰의 핵심 매력입니다. 양감이 풍부한데 뭉개지지 않습니다. 서브베이스까지 깊게 내려가면서도 중음역을 가리지 않아서, 베이스가 강한 곡을 들어도 보컬이 묻히는 느낌이 적습니다. 고음은 치찰음을 억제하면서 시원하게 뻗는 방향인데, 14kHz 부근에서 피크가 있어 특정 곡에서는 날카로움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공간감은 밀폐형 헤드폰치고 놀라운 수준입니다. 오픈형 헤드폰이 떠오를 정도라는 평가가 한국과 해외 커뮤니티 양쪽에서 반복됩니다. 악기 분리도, 스테레오 이미징 모두 무선 ANC 헤드폰 카테고리에서 최상위급이라는 데 이견이 거의 없습니다.

ANC를 켜고 끄더라도 음질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많은 경쟁 제품이 ANC 작동 시 저음이 부풀거나 고음이 빠지는 현상을 보이는데, H95는 그런 차이가 미미합니다.

다만 중음역이 살짝 후퇴하는 성향이라 보컬 중심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는 호불호가 갈립니다. 건조하다는 평가와 자연스럽다는 평가가 공존합니다. 클래식이나 재즈처럼 공간감과 악기 해상력이 중요한 장르에서 이 헤드폰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ANC는 경쟁 제품에 확실히 뒤처진다

노이즈 캔슬링이야말로 H95의 가장 뚜렷한 약점입니다. Sony XM5와 AirPods Max 대비 차단량이 눈에 띄게 적습니다.

H95의 ANC 철학은 “적막”이 아니라 “고요함”입니다. 이압감(귀 먹먹한 느낌)을 최소화하면서 거슬리는 소음만 자연스럽게 줄이는 방향이라, 지하철이나 비행기의 저주파 소음은 잘 걸러내지만 사람 목소리 같은 중고주파 소음은 상당 부분 통과시킵니다.

5단계 수동 조절 방식이라 환경에 따라 직접 돌려서 세팅해야 합니다. Sony XM5처럼 주변 소음을 실시간 분석해 자동으로 조절하는 적응형 ANC는 탑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2020년 출시 제품이라는 한계입니다.

특히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통화 중에는 ANC가 비활성화됩니다. 통화 마이크와 ANC 마이크를 공유하는 구조 때문인데, 시끄러운 카페나 길거리에서 전화를 자주 받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은 치명적입니다.

반대로 트랜스페어런시(주변음 듣기) 모드는 최고 수준입니다. 헤드폰을 끼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외부 소리 전달이 가능합니다.


빠진 기능들이 꽤 많다

115만 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기능 목록이 빈약합니다.

기능H95Sony XM5 (약 38만 원)
착용 감지 (자동 일시정지)
자동 적응형 ANC
Speak-to-Chat
LDAC 코덱
위치 추적 (Find My 등)
멀티포인트

H95가 지원하는 코덱은 SBC, AAC, aptX Adaptive입니다. aptX Adaptive는 24bit/96kHz 하이레즈를 지원하지만, 안드로이드 유저 상당수가 선호하는 LDAC는 없습니다. 아이폰 사용자라면 어차피 AAC가 기본이므로 차이가 없지만, 안드로이드 유저에게는 아쉬운 부분입니다.

B&O 앱의 EQ 인터페이스인 ‘Beosonic’은 원형 그래프 위에서 점을 움직이는 방식입니다. 직관적이긴 한데, 정밀한 주파수 조정이 불가능합니다. 앱 자체도 계정 필수 생성, 위치 서비스 요구, 재연결 시 불안정 등 소소한 불편이 있습니다.


볼륨이 작다는 불만, 요다 현상

한국 커뮤니티에서 반복적으로 올라오는 불만이 출력 부족입니다. TV에 블루투스로 연결하면 볼륨을 거의 최대치까지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여러 건 확인됩니다. 스마트폰 직접 연결 시에는 대부분 충분하지만, 소스 기기에 따라 볼륨 여유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요다 현상”이라 불리는 외관 문제도 있습니다. 이어컵이 머리에서 상당히 돌출되어 측면에서 보면 요다 귀처럼 보입니다. 머리가 작은 사람일수록 심해집니다. 착용감 자체는 323g 무게가 균일하게 분산되어 나쁘지 않지만, 머리가 큰 편이면 측압이 다소 강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밝은 색상(Grey Mist 등)은 양가죽 소재 특성상 오염에 취약합니다. 땀이나 피지가 묻으면 변색 가능성이 있어, 관리에 신경 써야 합니다.


가격과 구매 시점

현재 한국 시장의 주요 채널별 가격입니다.

구매처가격비고
B&O 코리아 공식몰약 ₩1,159,200정가 대비 20% 할인
쿠팡 / 11번가₩1,150,000~₩1,159,200색상별 차이 있음
이어폰샵₩1,100,000일부 색상 품절
Amazon US (직구)$700~$875 + 관부가세총 약 ₩1,100,000~₩1,200,000

해외직구 시 한국 A/S 보증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가죽 소재 제품이라 이어패드 교체 등 유지보수가 필요한 시점이 반드시 오는데, 국내 정품 보증 여부를 따져야 합니다.

2024년 9월 후속 모델 H100이 약 219만 원에 출시되면서, H95는 B&O 플래그십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는 사실상 가장 저렴한 진입점이 됐습니다. 일부 색상은 재고 소진이 진행 중이어서, 원하는 색이 있다면 여유가 많지 않습니다.


경쟁 제품 핵심 비교

항목B&O H95Sony XM5AirPods MaxMomentum 4
실거래가~115만 원~38만 원~70만 원~35만 원
무게323g250g386g293g
배터리(ANC)38시간30시간20시간60시간
ANC양호최상최상보통
음질최상양호우수우수
빌드최상보통우수보통

음질과 빌드 퀄리티에서 H95가 앞서는 것은 분명합니다. 소니 XM5를 옆에 놓으면 재활용 플라스틱과 알루미늄+가죽의 체급 차이가 극명합니다. 그러나 ANC 성능과 편의 기능에서는 3배 저렴한 XM5가 오히려 앞섭니다.

Sennheiser Momentum 4는 음질 면에서 H95에 가장 근접하면서 가격은 3분의 1 수준입니다. 순수 음질 대비 가격만 따지면, H95의 가격 정당성을 가장 위협하는 제품입니다. 다만 소재와 마감의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이 부분에 가치를 두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론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헤드폰이 맞는 사람, 맞지 않는 사람

H95는 철저하게 럭셔리 오디오 기기입니다. 기능표 경쟁에서는 40만 원대 제품에 밀리는 항목이 여럿 있지만, 음질의 절대적 수준과 소재의 촉감적 만족도에서는 무선 ANC 카테고리 전체를 통틀어 최상위입니다.

맞는 사람: 실내(집, 사무실) 위주로 음악 감상을 하며, 클래식·재즈·어쿠스틱 등 공간감이 중요한 장르를 즐기고, 프리미엄 소재와 조작 감각에 가치를 두는 사람. ANC에 대한 기대가 “완벽한 차단”보다 “자연스러운 감소”에 가까운 사람.

맞지 않는 사람: 출퇴근 지하철에서 강력한 노캔이 필수인 사람. 통화를 자주 하면서 ANC가 꺼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사람. 가격 대비 기능 목록을 냉정하게 따지는 사람. 이 경우 Sony XM5가 모든 면에서 합리적입니다.

H95는 헤드폰이라기보다 “소리하는 공예품”에 가깝습니다. 그 공예품에 115만 원의 가치가 있느냐는, 결국 음질과 소재가 주는 감각적 경험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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